잡론4 초서체 글씨와 서예 나는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붓을 잡았다. 그땐 정확한 의미를 모른채 부친의 초서글씨를 따라 쓰는 것이 일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글귀가 있다. 초서체로 된 君子之交 淡若水라는 글귀가 항상 대청 마루에 항상 걸려 있었다.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과 같다는 의미인데, 그당시 어린 나이에도 이 글이 좋아서 항상 임서를 했고, 이 글 때문에 한문에 푹 빠지게 되었다.. 정말 친구사이에는 이해관계를 떠나 항상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귀는 것이 중요한데, 비단 친구관계뿐 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그러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초서란 해도해도 어려운 서체인데,. 20대 때는 왕희지와 왕탁의 글씨를 주로 임서하였다. 그 당시 고향 동네의 만장과 명정은 내가 도맡아 썼더. 국전에도 몇번 입상했지만.. 2025. 2. 21. 난중일기 연구성과 - 역사의 진실은 만고불변의 진리 "나는 이순신의 문헌을 감정평가하는 현충사의 전문위원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세상 교화에 도움되는 정론만을 추구한다." 일본인의 오독도 일본의 잔재이니 이를 청산하는 것이 급선무다. 일본인의 오독을 추종하는 행위는 이순신역사 왜곡은 물론, 정통학자가 연구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이런 행위는 친일파의 행위와 다름이 없다. 이제는 바른 안목으로 잘못된 일본인의 잔재를 청산해야 할 때다. 바야흐로 현명한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이 요구된다. - 告言 본인의 여진공(女眞共)관련 논문이 권위있는 고전학회의 kci학술지에 게재되었다.(2022, 7) 국내 최고 전문학자들이 일본인이 오독한 입(卄)과 삽(卅)자를 공(共)자로 교감한 본인의 견해를 인정한 것이다. 이제는 일본인의 오독이 맞다고 주장하거나 이를 추종하.. 2022. 4. 8. 충무공 이순신의 초상화에 대한 단상 후대의 이순신 초상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가장 오래된 이순신의 초상화는 부산 동아대학 박물관의 소장본과 1918년 심전 안중식이 그린 초상화를 들 수 있다. 동아대 박물관 소장본은 임진왜란 직후 이순신을 따라 종군했던 한 승려가 그린 그림을 조선 후기에 미상인이 모사한 것인데, 이는 중국화법이 가미된 추상화라는 문제점이 있다. 안중식의 그림도 역시 상상에 의해 해학적으로 그린 초상화이다, 그 외 20세기 초반에 목판으로 제작된 이순신 초상화가 있다. 이는 전립(戰笠)을 쓴 형태에 화살통을 뒤에 찬 무인의 모습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이 형태의 초상화가 여러 곳에 대본으로 사용되었다. 이형태의 초상화는 국가에서 제작한 우표에도 사용되고 노산 이은상이 해방 후에 간행한 《이충무공일.. 2022. 4. 8. 충무공의 초상화에 대한 단상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가장 오래된 이순신의 초상화는 부산 동아대학 박물관의 소장본과 1918년 심전 안중식이 그린 초상화를 들 수 있다. 동아대 박물관 소장본은 임진왜란 직후 이순신을 따라 종군했던 한 승려가 그린 그림을 조선 후기에 미상인이 모사한 것인데, 이는 중국화법이 가미된 추상화라는 문제점이 있다. 안중식의 그림도 역시 상상에 의해 해학적으로 그린 초상화이다, 그 외 20세기 초반에 목판으로 제작된 이순신 초상화가 있다. 이는 전립(戰笠)을 쓴 형태에 화살통을 뒤에 찬 무인의 모습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이 형태의 초상화가 여러 곳에 대본으로 사용되었다. 이형태의 초상화는 국가에서 제작한 우표에도 사용되고 노산 이은상이 해방 후에 간행한 《이충무공일대기》에도 수록되었다. 그후.. 2022. 3. 10. 이전 1 다음